편지/斷想
이석원의 글
2018. 3. 6. 15:48그의 글을 읽는 것은 편하다. 솔직하게 쓰여져서일 것이다. 3분의 1정도를 읽었지만 읽는 내내 '나도 이토록 자유롭게 쓰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모두가 읽는 글임에도 자신의 얘기를 가감없이 써내려가는 그는 참 용감하다. 개인 일기장에나 쓸 수 있을 법한 글들을 책으로 엮어냈다. 지금의 나는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부럽다. 너무도 정리되고 필터된 내 글들이 싫어지는 순간이다. 블로그를 접고 일기장을 꺼내야할 때일까, 아니면 용기를 낼 때인가. 조금 더 솔직해지도록 노력을 해봐야겠다. '전역만 하더라도...' 하는 핑계를 대본다. 솔직해지자.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기록병
2018. 2. 24. 16:00어느 정도는 기록병이 있는게 확실하다. 그 시작은 잃어버린 집 때문이었다. 이사 후 시간이 지나 찾아간 집에는 그 터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유년시절의 기억을 잃은 듯 하였다. 공사를 위한 땅만이 드넓게 헤집어 져 있을 뿐이었다. 그때부터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잊는다는 것과 잃는다는 것은 내게 동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잊지 않고 싶은 순간들을 사진으로 찍기 시작했다. 때로는 글로 남기기도 했는데 생각을 잊지 않고 싶어서였다. 귀찮고 지난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으나 사진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입대 후에는 강박적인 메모의 양상을 띄기도 했다. 사진도 찍을 수 없었고 시간을 들여 글도 쓸 수 없는 시간이었다. 후에라도 그 기억을 따라갈 발자취라도 남기고 싶었다. 마포경찰서로 전입 후에는 분..
한 사람이라도 2
2017. 3. 5. 02:43이전에는 안내 방송으로 안쪽부터 앉아달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그마저도 이제는 없애버린건지 들리지 않는다
기차에서
2017. 1. 1. 21:08또다시 이곳이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돌아갈 때면 항상 오래된 이들이 떠오른다. 정작 부산에 다다라서는 별 감흥이 없다가 떠날 때가 되면 연락하게 된다. 직접 만나기는 귀찮으나 목소리는 듣고 싶어서일까. 늘상 다음을 기약하나 매번 이곳에서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꼭 만나야만 인연이 유지될까 하는 회의적 생각도 여기에 한 몫 할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늘상 아쉬운 것보다도 홀가분한 것에 가까웠다. 머물고 싶은 곳을 찾고자 했으나 끝은 항상 그러지 못했다. 그곳은 바로 사람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것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 사람이라도 1
2016. 12. 15. 00:13집으로 돌아가는 신호등 앞이었다. 아마도 걸음을 멈추는 유일한 시간이다. 이곳에선 보행자 신호의 파란불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사실 별로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다. 신호등 제어기인지 변압기인지 모를 것 위로 항상 쓰레기가 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을 돌아가기엔 몸이 가장 무거울 시간이다. 그저 허무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럴때면 음료의 수만큼 버리고 간 사람들의 수많은 손이 떠오른다. 지금의 세태와 청문회가 떠올라서일까. '한 사람만이라도 제 일을 똑바로 한다면' 이라는 생각이 치밀었다. 손뼉도 마주쳐야만 소리가 나고 아니 땐 굴뚝엔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곱씹는 순간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은 물이 고여 탁해지듯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비릿한 냄새를 견뎌야만 한다. 사람에 대해 생각하자면 또다..
절반의 졸업
2016. 11. 24. 23:39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그리워한 적이 많은 것 같다. 나아가 초등학교 시절까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선택하라면 결정할 시간들이었다. 최근에는 부쩍 대학 시절이 많이 그리운 것 같다. 아직은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그립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제는 남은 시간보다 끝나버린 시간들이 길어져 바라보면 헤어질 시간이 먼저 떠오르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이번 정기연주회를 마치며 끝났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 같다. 몇 년 뒤 다시 복학을 하겠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여전히 변하지 않을 사범대학의 건물만으로 그 공허함이 채워질지는 모르겠다. 남은 일 년은 아마도 다음을 바라보는 시간에 가까워 학교를 다니는 것 같지도 않을 것이다. 허무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아 외면하고 싶은 동시에..
사라짐에 대한
2016. 9. 3. 11:07꿈 속에선 어릴적 뛰놀던 풍경의 배경들이 뒤집히고 확장되어 나타나곤 했다. 그때마다 다시금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약 4년전 재개발로 인해 어릴적 살던 아파트와 그 주변의 모든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상실감이란 단어의 뜻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잃어버리기 전 한번 더 가보지 않았음에 대한 후회와 거짓말 같은 상황에 대한 허무가 너무도 컸다. 자전거를 타고 찾아간 옛 자리에 혹시나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이 있을까 동네를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그때에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림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기억을 묘사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실력이었고 결국 사진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 그리하여 꿈속에서 불쑥 튀어나올만한 풍경과 모습들을 사진으..
침상에서
2016. 7. 27. 06:17나 자신을 깨우고 움직이는 일은 너무나도 쉬운 것이었다. 어두운 방 홀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것만으로 동기는 완성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또한 어렵지 않았다. 오직 거스를 수 없는 시간만이 제약일뿐 불가능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잠든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중지한다거나 자제한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처음과 끝은 이어져 있어 그 끝은 또다른 처음과 맞닿아 있었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은 도막난 조각처럼 이어져 있었고 필시 매 끝의 매듭을 지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편히 잠들 곳이 필요했고 미련없이 잠재워줄 사람이 필요했다.
틈
2016. 7. 5. 06:10틈이 있는 삶은 견디기 힘들다. 여지를 두는 것만 같아 불만족스럽다. 몇 번의 경험으로부터 연유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간 준비해 온 일을 목전에 두고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가 없기란 쉽지 않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는 얼마나 덜 후회하는가와 상관관계에 있었다. 그러나 후회 자체가 싫었다. 찾아낸 방법은 한 치의 틈도 남기지 않는 것이었다. 오로지 그 일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불가항력적 수준으로 매진하여 후회가 들어설 틈조차 남기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한 가지 일이 끝남과 동시에 다음으로 미련없이 넘어가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어 한참을 그렇게 살았다. 조금의 후회를 동반한 일상적인 삶보다는 후회 없는 비일상적인 삶이 더 자유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가끔 예상치 못한 균열이 발생하곤 했다. 불..
잠꼬대 14
2016. 7. 2. 11:04조금만 열심히 하지 않아도 악몽에 쫓긴다. 꿈에서는 하루 세 과목의 시험이 있었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날 무렵 나는 다른 아이의 시험지를 베끼기 시작했고 그 모습이 발각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사무실로 따라오라 하셨고 그 사무실은 교실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넋이 나가 남은 시험을 포기한 채 사무실로 떠났다. 분명 2시간 떨어진 거리였으나 하루의 전부를 헤매도 찾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학교를 벗어나는데에만 몇시간이 걸렸다. 목적지 근방에 이르자 이유불문 나를 쫓는자들까지 가세하여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사무실로 향하는 길이 길어질수록 고통의 시간은 길어졌다. 차라리 벌을 받고 모두 털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늘상 반성의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불안과 공포와 괴로움에 짓이겨진 시간이 전부일 뿐이..
2배속을 원한다
2016. 6. 20. 19:33예전에 수강신청할 과목을 고를 때에는 한 학기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될 지를 따져보며 과목을 선택했다. 그러나 대학수업을 몇 년간 듣다보니, 그리고 나 자신의 학습 행태를 돌이켜보자니 이는 더이상 의미가 없음을 알게됐다. 나는 강의식 수업을 견디지 못한다. 갑갑하고 따분하며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하면 e-러닝 강의를 듣거나 아니면 수업을 듣지 않아도 시험 전날 교재나 유인물만 읽어봐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한다. 평소 수업 때는 출튀를 하거나 너무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노래 가사를 외운다. 등록비가 아깝지 않냐고 하는데 시간이 더 아깝고 의미없이 짓눌리고 있을 내 엉덩이가 더 안타깝다. 그런데 증세는 점점 더 심해져 이러닝마저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
벤치에서 2
2015. 12. 26. 23:38잠에서 깨고 간밤에 도착한 메시지를 하나 읽는 것만으로 나의 우울은 말끔히 사라졌다. 지난밤의 악몽을 끊어내는 것은 손쉬운 일이 되어 있었고 그것은 그녀와의 관계로부터 가능해진 것이었다. 안락한 의자에 몸을 뉘이어 쉬는 꿈을 꾸곤 했었다. 영영 가질 수 없을 것 같았으나 어느새 눈앞에 내려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때때로 시간은 버겁지만은 않게 느껴졌고 흐름에 따라 실려가는 나날들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은 이렇게 지속되고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이상 쌓여가는 글들은 없었고 정리되지 못한 사진도 없었다. 나날은 이어지고 관계는 내밀해졌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날이 있었다. 글은 퍼붓거나 엎어버리기를 반복할 뿐 쓰여지지 않았다. 지금의 글 또한 얼마간 멈춘 채 방치되어 있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