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스쳤다가 잠시뒤 아! 하며 오싹해질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던 것이 두려울 만큼 크게 다가올 때가 있다. 가끔은 생각도 그러할 때가 있다. 조금 전 코끼리의 모습을 떠올리다 공포에 휩싸였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면, 외계인의 모습에 대한 상상을 하다 돌연 코끼리라 불리는 것의 얼굴과 형태가 떠올랐다. 뇌리에 스친 그것의 생김새는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낡은 거죽을 뒤짚어쓴 것만 같은 얼굴, 그 아래에 자라나는 흰색의 뼈와 같은 것, 길다랗고 괴이한, 그러나 놀랍게도 구부리고 감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코와 같은 것, 얼굴 양 옆으로 달려 펄럭거리는 넓적한 귀와 같은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갈라져 찢어질 것 같은 표면까지. 어느것 하나도 괴이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살아움직인다는 것이다. 이것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니. 그것도 동물원이라 불리는 시설마다 이런 것이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조금의 돈만 내면 이것을 직접 볼 수 있다니 거짓말 같다. 이것으로부터 받은 느낌은 마치 외계생명체를 본 듯한 것이었다. 신기함과 메스꺼움이 함께 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말도 안되는 생김새의 생명체다. 실제든 상상이든 이것의 모습에 이토록 가까이 그리고 오랫동안 집중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오늘 처음으로 코끼리라 불리는 것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한동안 동물이라 불리는 것들의 사진과 영상에 빠지게 될 것 같다. 그래 지금 떠오른건데 예전에 간판에 쓰여진 글씨가 갑자기 팍 확대되며 처음으로 각진 기호로 보였을 때, 그때와 지금이 꼭 비슷한 느낌이다.
photograph: moiciel.tistory.com / painting-course.com / /www.elephant-fac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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